일곱우뢰의 비밀을 알리신 다윗의 뿌리! 안상홍님
오늘날 교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라면 단연‘일곱우뢰’와 관련된 내용이다. 기득권 단체에서는 성경에 명시된‘일곱 우뢰는 인봉되어 알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일곱우뢰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으므로 이와 관련하여 일체 함구하고 있을뿐더러 오히려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일곱우뢰는 오늘날까지 감추어져 있는 비밀이다. 따라서 성경을 보고 연구한다고 해서 일곱우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오직 다윗의 뿌리에 의해 일곱우뢰는 개봉이 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하신 안상홍님은 다윗의 예언에 따라 복음을 전파하셨고 많은 교회들이 알지 못하는 일곱우뢰의 비밀을 개봉하셨다. 이에 일곱우뢰를 바라보는 교계의 현실을 점검하며 일곱우뢰는 어떤 이유로 봉해졌던 것인지 또한 일곱우뢰는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1. 일곱우뢰를 바라보는 교계의 현실과 모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곱우뢰를 깨달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일곱우뢰의 인봉’ 이라는 성경의 기록이다. (계10:4) 즉 인봉되었다는 부분만 강조하여 ‘알아 볼 수 없는 상태’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르다. 교계에서도 일곱 우뢰가 중요한 내용이라는 사실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 알지 못하기에‘알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의 가르침을 알려야 할 사명이 있는 종교지도층에서 일곱우뢰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단언(斷言)하는 것은 목회자로서 성경연구를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무책임한 일이며 나아가서는 타인의 알권리까지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전혀 알 수 없고 영구히 비밀’이라고 주장하는데, 성경의 ‘비밀’이라는 빌미로 자신의 신앙적 무지를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미 성경에는‘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기록하고 있기에 성경의 연구를 게을리 해서도 안 되며 일곱우뢰가 인봉되었다는 특정부분만 강조하여 해석해서도 안 된다. 일곱우뢰가 인봉될 것을 살펴보았다면 반대로 개봉하게 될 예언의 말씀도 살펴보아야 한다.
[계 22;10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위의 내용을 통해 일곱우뢰의 개봉하게 될 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알아야 할 시기에 일곱우뢰에 대하여‘알 수 없다’며 모든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알 필요가 없는 것으
로 유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훼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일곱우뢰를 어떠한 이유로 인봉하셨는지 일곱우뢰의 비밀과 다윗의 뿌리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일곱우뢰의 인봉
1) 모든 사물을 인봉하는 목적과 중요성
‘일곱 우뢰를 인봉하라’고 하셨는데 인봉한다는 것은 ‘타인이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도록 뚜껑을 닫은 물건에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일상생활을 관찰해보자. 흔히 편지는 봉투에 넣어 밀봉하는데 밀봉했다고 해서 기록된 편지 내용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일까? 오히려 중요한 내용이기에 최종적으로 편지를 읽어야 할 대상을 위해서 일정시간동안 봉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곱우뢰가 인봉된 것도 구원의 비밀이 담겨 있으므로 최종적으로 일곱우뢰의 비밀에 대해 알아야 할 대상을 위해서 인봉된 것이다. 만일 일곱우뢰를 부인하는 이들의 주장대로 일곱우뢰에 대해 알 수가 없게 된다면 기록할 필요도 없으며 봉할 이유는 더욱 없는 것 아닌가? 구원의 비밀로 인봉된 일곱우뢰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2) 일곱우뢰를 인봉하신 원인
일곱우뢰를 인봉하신 이유는 과거 느부갓네살왕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꿈을 잃어버렸는데 이는 하나님의 모략이었다. 왕은 자신의 뇌리에서 지워진 꿈 내용을 알고 싶어 번민하였다. 이 때 왕의 주변에 있던 신접한 자들이 그 꿈을 알려고 시도했지만 알 수 없었고 결국 다니엘을 통하여 느부갓네살왕이 잃어버렸던 꿈을 찾게 (개봉)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접한 자들 가운데 다니엘만이 참선지자임을 입증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일곱우뢰의 인봉과 개봉도 마찬가지다. 지난날 다니엘을 통하여 잃어버린 꿈을 찾아 해석하여 참 하나님을 증거하였듯이 인봉되었던 일곱 우뢰의 비밀을 알려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일곱우뢰의 비밀은 영생주시는 구원자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기 위한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또한 최후 비상시에 택하신 백성들에게만 일곱우뢰의 비밀을 알려 주셔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만일 일곱우뢰를 인봉하시지 않았다면 느부갓네살 왕의 주변의 박수나 술객이 거짓 해몽을 하듯,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구원사업의 방해가 심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곱 우뢰를 인봉하게 하사 개봉할 시기에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 속의 깊은 진리를 해석할 때, 그 진리를 깨닫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히 믿게 하시려고 인봉하신 것이다. 결국 일곱우뢰를 인봉하신 것은 택하신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한 특별한 선물이다. 그렇다면 일곱우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3. 일곱우뢰의 정의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수이며 우뢰는 천둥 또는 뇌성을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의 예언상 일곱 우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언약의 말씀을 발표하실 당시의 지난 역사를 통해 확인해보자!
[출19:18 -20:18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신5: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모세)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동일한 내용의 기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고 우렁찬 우뢰소리로 듣게 되었다. 하나님에게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모세는 시내산에 오른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이 담긴 증거판(십계명)을 받아왔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수행하며 십계명과 언약의 말씀이 기록된 증거판을 낭독하였던 것이다.
일곱우뢰(계10:4)를 기록했던 동일한 저자인 요한은 복음서를 통해 구약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요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백성을 위한 하늘의 소리를 ‘우뢰가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 역사 속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였으므로 결국 우뢰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반포하신 율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성경을 통해 다시 확인해보자!
[사8:16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요한은 일곱우뢰가 봉하였다(계10:4)고 하였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율법을 봉함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따라서 일곱우뢰는 율법 중에 어느 부분인 것만은 틀림없다. 율법 중에 오늘날까지 인봉되어 있었던 것은 3차의 7개 절기뿐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3차 7개의 절기는 사도시대 이후 사단 마귀에 의해서 훼파되었고 거짓 계명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3차 7개 절기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재림그리스도에 의해 다시 재건되어야 한다. 그래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계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시었다.
이 비밀은 초대교회 시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전해 주신 3차 7개의 절기 즉 새 언약의 복음이다. 이 새 언약의 복음이 사도시대 이후 사단에게 밟힘을 당하고 암흑세기를 지낸 오늘날까지 봉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인봉되었던 일곱우뢰가 개봉될 것이다.
4. 성경학자들이 일곱우뢰를 알지 못하는 원인
성경은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인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하는 책이다. 이러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비밀과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막연히 정독한다고 해서 모든 내용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창조주의 오묘한 이치 속에 기술되었기에 인간의 지혜로는 터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산재해 있다. 이로 인해 과거에도 수많은 성경학자와 철학자들이 성경을 연구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엇갈린 이견(異見)으로 혼란만을 가중시켰고 그로인해 많은 교파를 만들어 낸 결과물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흔히 인간 지식의 절정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이들이 성경의 진리에 접근하지 못했던 이유는 모든 문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
[마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이처럼 천국의 비밀은 허락된 자가 있고 허락되지 않은 자들이 있다. 이미 구약에도 일곱우뢰를 알아듣던 모세가 있었지만 많은 백성들이 이를 알지 못하였다. 또한 예수님 당시에도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생한다는 말씀을 알아들었던 12제자가 있었지만 ‘이 말씀은 어렵다’며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떠나갔던 많은 제자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일곱우뢰를 아는 지혜를 가진 자들이 있으며 이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양분되고 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일곱우뢰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그 이유를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오늘날 대개의 교회들이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를 지키고 있지만 이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계명이다. 문제는 성경을 연구한다는 학자들이 어떤 계명을 지키고 있는가? 그들도 위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성경에 없는 것을 지키는 이들을 성경학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 그리스도인들은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을지라도 그 내용을 이해하는 안목이 사라져 영적으로 총명하지 못할 것을 알리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흔히 거짓선지자라고 일컫는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악한 자로 성경을 보아도 보지 못하며 깨닫지 못할 것이다.
[단12:9 -10 마지막 때 악한 자는 깨닫지 못하리라]
[느13:17 안식일을 범하여 악을 행하느냐]
5. 일곱우뢰를 개봉하신 다윗의 뿌리!
성경해석의 난관에 부딪힌 교계의 현실에서 성경은‘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는 교훈의 말씀을 주고 있다. 이 내용의 깊은 뜻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이 알려주실 수 있기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까지 성경의 해석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때 비로소 일곱우뢰에 대한 비밀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인지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심각하게 연구해야한다.
[계 5;1-5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인봉된 일곱인으로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해 영적 답답함을 호소하는 요한에게 희망의 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윗의 뿌리의 출현이다. 다윗의 뿌리는 성경의 진리를 해석하며 일곱우뢰를 개봉하게 될 것을 알리고 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할 점은 구약시대 증거판에 기록된 율법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2000년 전 새언약의 율법을 허락하셨던 분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혼탁한 시기에 성경의 진리를 알려주며 하나님의 율법인 일곱 우뢰를 개봉하게 되실 분은 다윗의 이름으로 임하실 하나님이시다. 일곱 인이 봉해짐으로 성경의 진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만인들을 위해 구원자께서 오시는데 구원자라면 다윗의 예언을 이루셔야 하며, 일곱인을 개봉해주셔야 한다.
* 스스로 다윗임을 주장하는 이들의 모순
교계에서는 본인 스스로 다윗임을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윗이라는 이름만을 차용한다고 해서 다윗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윗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곱우뢰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계 5;5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그러나 그들은 ‘일곱우뢰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본인 스스로 다윗이라고 주장하면서 일곱우뢰에 대해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보통 모순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스스로 높임을 받으려는 계산속에 그리스도인들을 기만했던 사건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 시대 다윗이라면 육신적인 생애 면에서도 육적 다윗의 생애와 일치해야 한다. 즉 육신적 다윗이 30세에 왕위에 등극하여 40년간 통치하였던 것처럼 30세에 영적 기름부음을 받고 초림 그리스도께서 이루지 못한 37년의 공생애를 살아가야 한다.
(삼하5:4 삼십 세에 왕이 되어 사십년간 통치, 눅3:23 예수님 삼십 세에 천국복음 전파,눅13:6 삼년간 복음 전파, 십자가 운명으로 못 다 이룬 37년의 복음생애는 재림그리스도께서 이루셔야 함)
그러나 스스로 다윗임을 주장했던 이들의 생애가 이러한 예언을 성취하였는가? 과연 그들이 30세에 침례를 받고 37년의 복음의 사역을 마치면서 향년 67세로 운명하였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허락하는 성경을 통해 이 시대 다윗의 예언을 성취하신 재림그리스도를 찾을 시기이다.
6. 다윗의 뿌리
말일에 사는 백성이라면 스스로의 신앙이나 열심히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찾아 섬길 때, 구원이 있다. 성경을 통해 다윗에 관련된 깊고도 오묘한 비밀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호세아 선지자는 다윗 이후에 등장한 선지자이므로 실제 다윗을 언급한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예언적인 다윗을 만나야 한다.
[눅1: 31 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었다. 즉 예수님은 예언적인 다윗왕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 임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생애 면에서도 육신적 다윗왕과 일치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증거하시기 위해 다윗을 세우셨으니 일대일관계에서 그 생애를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아야 한다.
[삼하5:3-4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삼 십 세에 기름부음으로 왕이 된 다윗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다윗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길을 걸어가셔야 한다. 영적 유대인의 왕(요18)으로 임하신 예수께서는 삼 십 세에 물로써 침례를 받으시고 천국복음을 가르쳐 주셨다. (눅3:21)
예수님께서 20세나 혹은 25세에 침례를 받으실 수도 있었지만 30세에 침례를 받으신 기록은 다윗왕의 예언을 확실하게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었다. 즉 다윗왕과 예수님은 예언과 예언 성취관계에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십자가 운명으로 인하여 복음전파를 3년 밖에 하시지 못하셨다. 30세에 왕위에 등극해서 70세까지 사십년간 통치를 했던 육신적 다윗왕과 예수님과는 육신적 생애면에서 거리가 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 어린양(예수님)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계4:4)
예수님께서 다윗의 입장으로 오신 것은 사실이지만 다윗의 생애를 이루시는데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예언적 다윗왕으로 40년의 복음의 생애를 걸으셔야 하건만 3년 밖에 복음을 전파하시지 못하셨으니, 육신적 다윗왕과는 생애 면에서 37년이라는 왕위 기간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37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히 9:27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이처럼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인류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두 번째 임하실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 예언에 따라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왕의 예언에 따라 30세에 침례를 받으시고 37년의 복음의 생애를 걸으셔야 한다.
이 예언에 따라 안상홍님께서는 1918년 강탄하시고 30세가 되시던 1948년 침례를 받으시고 사단의 세력으로 인하여 훼손된 초대교회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이는 육신적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하던 해, 영적 이스라엘 왕국의 독립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사라진 암울한 현실에서 영원한 언약의 진리 유월절을 회복해 주시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안식일을 허락하셨다. 이렇게 생명의 진리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여 주셨다. 그래서 안상홍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으로 믿기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안상홍님께서는 다윗왕의 남은 생애를 이어나가시기 위하여 37년 복음의 생애를 마치시던 1985년 하늘로 올리우셨다. 1981년 주간종교신문을 통해 당신께서 37년의 복음의 생애를 마치고 올리우실 것을 알리셨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운명에 대하여 예언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눅8:22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안상홍님께서 가져다 주신 영원한 언약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안상홍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재림그리스도이다. 안상홍님 믿고 영원한 천국에 함께 입성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